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내 눈에는 ‘학교의 아이들’만 보였다. 2020년부터 3년간 혁신교육지구 업무를 전담하는 순환보직 장학사로 안산시청과 교육지원청이 함께 꾸린 혁신교육협력센터에서 일하면서 비로소 ‘안산의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문을 나선 아이들이 머무는 골목과 하천, 작은도서관과 행정복지센터, 그리고 그 곳곳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는 마을 어른들이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은 이제 누구나 아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이 말이 정책의 언어가 되고, 다시 마을의 일상이 되기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과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이 글은 경기도와 안산을 중심으로 마을교육공동체가 걸어온 흐름을 돌아보고, 현장에서 마주한 쟁점과 앞으로의 정책 과제를 함께 짚어보려고 한다. 나는 마을교육의 끝이 결국 시민교육에 있다고 믿는다. 아이들이 자기가 사는 곳을 알고 아끼며, 그곳에 머물러 살고 싶은 마음을 품고, 나아가 그곳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직접 움직이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 마을교육공동체가 길러 내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그런 시민이다. 함께 길러 내고자 하는 교육의 최종 목표, 흔들리지 않는 북극성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1) 학교 혁신에서 지역 혁신으로
경기 혁신교육의 출발점은 2000년 폐교 위기에 놓였던 한 초등학교의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이었다. 이 흐름은 2009년 혁신학교 정책으로 이어졌고, 학교 안의 변화가 일정한 성과를 거두자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따라왔다. “학교 혼자서 아이의 삶 전체를 책임질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정책적 응답이 2011년 시작된 경기 혁신교육지구였다. 경기도교육청과 기초지자체가 협약을 맺고 함께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는 교육 협력 사업으로, 5년 단위 ‘시즌’으로 운영되며 성격이 크게 달라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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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기간 |
참여 지역 |
핵심 방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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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Ⅰ |
2011~2015 |
광명 · 구리 · 시흥 · 안양 · 오산 · 의정부 6개 시 |
주민에게 신뢰받는 공교육 혁신, 혁신학교 일반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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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Ⅱ |
2016~2020 |
안산 등 30개 시군으로 확대 |
지역교육공동체 구축, 교육협력지원센터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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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Ⅲ |
2021~현재 |
경기도 31개 시군 전체 |
'경계를 넘어 학교와 마을이 함께하는 혁신교육', 교육자치 · 교육협력 · 미래교육 |
시즌Ⅰ이 일반행정과 교육행정의 단순한 재정 협력에 가까웠다면, 시즌Ⅱ에서는 지역사회 교육 자원을 발굴해 학교와 잇는 일이 본격화되었고 이를 맡을 중간지원조직(혁신교육협력센터)과 전담 인력이 처음 등장했다. 시즌Ⅲ에 이르러서는 ‘지역교육생태계’라는 말이 정책 문서에 자리 잡았고, 지역 교육 의제를 함께 논의하는 지역혁신교육포럼이 조례로 제도화되었다. 이후 사업은 ‘미래교육협력지구’로 이름을 바꾸어 이어지고 있으며, 학교 밖 배움을 지역 단위로 넓히는 경기공유학교 등 새로운 정책과도 맞물려 있다.
2) 흐름을 관통하는 세 가지 변화
이 15년의 흐름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학교를 지원하는 지역’에서 ‘아이를 함께 키우는 지역’으로의 이동이다. 구체적으로는 세 가지 변화가 읽힌다. 첫째, 대상의 확장이다. 혁신교육이 학교와 교원의 변화에 집중했다면, 마을교육공동체는 학교 안팎의 모든 아이와 청소년으로 시선을 넓혔다. 경기교육이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첫머리에 둔 것도 이 맥락이다. 둘째, 주체의 확장이다. 처음에는 교육청과 지자체라는 ‘관(官)과 관’의 협력이었지만, 점차 주민· 활동가·학부모·학생이라는 ‘민(民)’이 교육의 주체로 호명되기 시작했다. 셋째, 단위의 축소다. 시·군 단위의 사업은 점차 학생의 생활권, 동네, 개별 학교 단위로 내려오고 있다. 교육이 삶과 맞닿으려면 결국 아이가 걸어서 닿는 거리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안산은 시즌Ⅱ인 2016년부터 혁신교육지구에 참여했다. 2020~2022년은 코로나19와 시즌Ⅲ 전환이 겹친 시기였는데, 돌아보면 위기가 오히려 새로운 방식을 시도할 계기가 되었다.
1) 아래에서 위로 – 마을별 분과포럼

안산혁신교육포럼은 교육지원청과 시, 시의회가 함께 이끄는 민·관·학 협의체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모이기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일곱 차례 회의를 이어 가며 다른 지역의 마을교육공동체 사례를 살폈고, 이 논의 끝에 ‘안산형 마을학교’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그러나 대표 몇 사람이 발표하고 영상으로 송출하는 방식으로는 마을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기 어려웠다. 그래서 2021년에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안산을 다섯 개 마을로 나누어 학생·학부모·교사·마을활동가에 도의원·시의원까지 마을마다 25명 안팎이 함께하는 분과포럼을 처음 열었다. 첫 모임은 동네 행정복지센터에서 얼굴을 맞대고 열었고, 방역 단계가 높아진 뒤로는 화상으로 이어 갔다. 마을에서 나온 의제는 저마다 달랐다. 청소년이 마음 편히 머물 공간, 흩어진 지역 교육자원 정보를 한데 모은 체계, 정기적으로 만나는 작은 단위의 마을협의체, 다문화 자원을 살린 교육, 시 외곽 학생들을 위한 통학 버스 노선까지, 생활 가까이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이 의제들은 그해 10월 대토론회에서 마을별 학생 대표들이 직접 발표했고, 교육장과 시의회 의장 등 포럼 지도부가 그 자리에서 답한 뒤 실행할 수 있는 기관으로 넘겨 정책에 반영하도록 했다. 작게 모여야 비로소 진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 그리고 학생이 지역 교육의 한가운데 설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이 포럼은 한 번의 행사로 끝나지 않도록 설계했다. 연초에 위원을 꾸리고, 2분기 마을별 분과포럼에서 의제를 모으고, 이를 주제와 분야별로 정리해 4분기 대토론회에서 학생들이 발표하고 답을 듣기까지, 한 해가 하나의 대주제 아래 이어지는 흐름이었다. 행사를 몇 번 열었느냐가 아니라 마을의 목소리가 정책에 닿았느냐를 성과로 삼으려 한 것이다. 마을 단위 분과포럼은 경기도에서도 처음 시도된 방식이어서 다른 지역에서 사례를 나눠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고, 그 과정은 인천일보에 여러 차례 소개되었다.
2) 학교마다 다른 마을 – 안산형 마을학교

2021년 시작한 ‘안산형 마을학교’(현 안산미래학교)는 학교와 마을이 함께 꾸리는 마을교육협의체를 바탕으로 학교 맞춤형 마을교육과정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학교마다 처한 사정이 다르기에 협의체를 다지는 ‘준비단계’와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정식단계’로 나누어 지원했다. 정식단계 4개교로 시작한 사업은 2023년 12개교로 늘었다. 선일초는 주민자치회·학교 앞 고려인 단체와 함께 다문화 학생 거주 지역의 환경을 가꾸었고, 석수초는 학교 앞 작은도서관과 손잡고 독서교육과 학부모 독서강사 양성, 다문화 학생 지원까지 이어갔다. 반월중과 반월동 마을활동가들이 함께한 ‘반달마을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마을 하천을 살리고, 마을 신문을 만들고, 학교 운동장에서 열리는 마을 음악회의 주인공이 되었다.

3) 만남의 장 – 학교 – 지역 연계 교육과정 마중물 교류회
학교는 지역 교육 자원 정보에 늘 목말라 있었고, 마을은 학교의 문턱을 어려워했다. 2022년 경기도에서 처음 연 교류회에는 지역 단체 40여 곳과 유·초·중·고·특수학교 교원 8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강사를 ‘고르는’ 자리가 아니라 수업을 ‘함께 구상하는’ 동료를 만나는 자리로 만들고자 했다.
4) 마을과 세계를 잇다 – 지속가능발전교육
안산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협의회와 함께 중등 교사 연구모임을 꾸렸다.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다’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정신은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과 다르지 않았다. 교사 연수회에서 시작한 모임은 안산시 지역교육연구회로 자리 잡았고, 교실과 마을학교의 실천을 모아 『행성 지구와 이렇게 어울려 살아요』(2024)를 펴냈다. 지역의 민간 협의체와 교사가 함께 교육 공헌의 길을 연 첫 사례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이런 성과 뒤에는 풀리지 않은 과제도 분명히 있었다. 순환보직을 마치며 쓴 석사학위논문 「지속가능한 교육 협력 사업을 위한 중간지원조직의 역할과 과제 연구」(2022)에서 경기도 여러 지역의 담당 장학사와 지자체 팀장, 도교육청 정책 담당자와 연구자, 마을활동가를 면담하며 확인한 쟁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거버넌스가 ‘관과 관의 조정’에 머물러 있다. 거버넌스는 본래 관이 주도하던 행정을 민과 함께 결정하고 책임지는 구조로 바꾸자는 뜻이다. 그런데 현장의 많은 센터는 교육청과 시청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데 힘을 쏟다 보니, 한 연구자의 표현대로 ‘중간지원조직’이 아니라 ‘중간조정조직’이 되었다. 두 기관 사이의 주도권 다툼이 센터를 유명무실하게 만든 사례도 있었다. 지원의 최종 대상은 학생과 학부모, 시민이어야 한다.
둘째, 플랫폼이 ‘소비형’에 머물러 있다. 지역 강사와 체험처를 목록으로 묶어 학교가 신청하게 하는 ‘원클릭 시스템’은 한때 획기적이었다. 그러나 정해진 메뉴를 고르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소비일 뿐이다. 프로그램 개수가 곧 성과와 예산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는 센터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본연의 일보다 자체 사업 운영에 매달리기 쉽다. 행사와 프로그램의 개수보다, 주민이 낸 의제가 정책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성과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셋째, 사람과 지속성의 문제다. 마을에서 함께할 사람 한 명을 발견하는 데 몇 년이 걸린다. 그러나 담당 공무원은 짧게는 1~2년이면 바뀌고, 그때마다 쌓아온 관계와 경험이 흩어진다. 3년 임기의 순환보직 장학사 제도는 이를 보완하려는 시도였지만, 제도가 끝나면 같은 문제가 되풀이된다.
넷째, 마을교육활동가의 위상과 처우다. 협력 수업에서 교사와 활동가의 관계는 분명해야 한다. 교육과정 전체를 설계하고 책임지는 것은 교사의 전문성이고, 활동가는 그 안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보태는 협력자다. 그렇기에 사전 협의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동시에 활동가의 시간과 노력도 정당한 노동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시간당 몇만 원에 그치는 협력 강사비, 원고료조차 없는 현실을 ‘열정’으로 메우게 해서는 오래갈 수 없다.
그렇다면 마을교육공동체가 정책의 유행을 넘어 지역의 체질로 자리 잡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논문에서 제안한 중간지원조직의 네 가지 핵심 기능을 바탕으로 정리해 본다.
① 판을 깔아주는 생태계적 플랫폼
플랫폼은 내용을 정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모일 마당을 마련할 뿐, 무엇을 나누고 만들지는 모인 사람들이 정한다. 교육 자원을 연결하는 것을 넘어, 학교·마을·기관이 서로의 필요에 맞게 자원을 새로 만들고 바꾸고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살아있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관이 기획하고 국민이 응모하는 공모사업도 점차 시민이 사업의 틀부터 함께 짜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② 교육자치·일반자치·주민자치를 잇는 거버넌스
시·군 단위 포럼만으로는 작은 동네의 삶을 담아내기 어렵다. 가장 작은 단위의 협의에서 시작해 이를 촘촘히 엮어 올리는, 아래에서 위로의 의제 발굴 구조가 필요하다. 특히 교육은 이제 교육청만의 일이 아니다. 마을만들기, 주민자치, 평생학습, 돌봄, 청소년 정책이 저마다 다른 부서와 센터에서 따로 움직이는 한 아이의 삶은 쪼개질 수밖에 없다. 지역 안의 여러 중간지원조직이 서로를 알고 함께 움직이는 연계가 절실하다. 안산의 마을별 분과포럼은 그 가능성을 보여준 첫걸음이었다. 해법은 이미 현장이 알고 있다. 2021년 분과포럼에서 학생과 주민들이 가장 먼저 꺼낸 요구도 흩어진 교육자원 정보를 함께 쓰는 공유 체계, 그리고 정기적으로 만나는 작은 단위의 마을협의체였다. 정책이 할 일은 이 요구를 받아 안을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③ 학생 생활권 단위 풀뿌리 교육협의체
정책과 담당자가 바뀌어도 이어지려면 결국 마을 스스로의 힘이 있어야 한다. 개별 학교, 학생 생활권 단위의 마을교육협의체를 주민자치회 교육분과와 연결하는 방안을 적극 고려할 만하다. 주민자치회는 법령에 근거한 조직과 예산이 있고, 마을의 삶을 돌보는 데 교육만큼 중요한 과제도 없다. 교사가 학교가 있는 동네의 주민자치에 참여하는 길도 열려 있다. 아이들의 교육을 중심으로 학교와 마을이 함께 자라는 것, 곧 공진화(共進化)의 모습이다.
④ 온·오프라인 지역사회 학습센터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배우고자 하는 사람과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 문제를 제기하려는 사람을 잇는 ‘기회의 망’을 꿈꾸었다. 코로나19를 지나며 우리는 배움이 교실 밖, 화면 너머에서도 일어난다는 것을 경험했다. 지역의 인적·물적 교육 자원을 기록하고 쌓아 학교 안팎의 모든 청소년, 나아가 주민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배움을 찾고 만들고 나눌 수 있는 지역 학습망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떠받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지역을 이해하고 오래 일할 수 있는 인력 제도, 교육청·지자체·마을이 같은 철학을 공유하도록 돕는 공동 학습 모임, 그리고 중간지원조직이 어느 한 기관에 기울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함께 가야 한다.
해마다 적지 않은 시민이 '교육'을 이유로 안산을 떠난다고 한다. 좋은 학원과 성적만으로는 이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다. 정주의식은 누가 가르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곳을 알고 그곳 어른들에게 배우고 그곳을 조금이라도 바꾸어 본 경험에서 자란다. 마을 하천을 살리던 반월의 아이들, 마을 의제를 들고 대토론회 단상에 섰던 학생들이 그랬다. 그런 경험이 쌓일 때 동네는 ' 떠나고 싶은 곳'이 아니라 '살고 싶은 곳', 나아가 '더 낫게 만들고 싶은 곳'이 된다. 그래서 마을교육의 목표는 결국 시민교육이다. 자기 삶터에 뿌리내리고 그곳을 더 나은 곳으로 가꾸려는 마음을 품고 실천하는 시민을 길러 내는 일, 그 점에서 마을교육공동체는 교육 정책이자 곧 마을만들기다. 학교는 더 이상 마을 속의 섬이어서는 안 되고, 마을은 학교를 남의 집처럼 여겨서도 안 된다. 학교와 마을이 함께 존재하고(공존), 서로 기대어 살며(공생), 함께 즐거운(공락) 공동체. 마을만들기를 고민하는 여러분과 학교의 교사들이 한 테이블에 앉는 순간, 그 길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