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이야기

[안산마을만들기 이슈브리프 vol.2] 다정곳간, 동네 가게가 어르신들의 돌봄사랑방이 되다(이진경)
  • person happyansan
  • schedule 2026-07-28
  • search 38

 

 

 

 

 

“하루 종일 있어야 말 한마디 나눌 사람 없고, 갈 곳이 없어”

 

우리동네연구소퍼즐협동조합(이하 퍼즐)은 주민들이 설립하고 운영하는 작은 주민공동체로서 다양한 주민 모임과 마을공동체 활동을 지원해 왔습니다. 그동안 공유공간과 공유주방, 공동밥상, 건강사랑방으로 동네 어르신들의 일상을 밀착해 살폈고, 재가장기요양사업을 통해 공적 돌봄의 영역에서도 주민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만나왔습니다. 그 마을돌봄 공동체 활동 속에서 근본적인 하나의 질문을 마주하였습니다.

 

 

 

 

“돌봄이 필요한 주민들이 자신이 살던 지역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의료, 요양, 복지서비스 같은 제도적 지원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마을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의 일상을 깊숙이 들여다보니, 제도와 서비스만으로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아프거나 위급할 때만 찾는 돌봄이 아니라, 평소에 사람을 만나고 안부를 나누며 익숙한 동네에서 나의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게 돕는 ‘일상적 관계망’이 필요했습니다.

일상적 관계망을 만들어 가는 마을돌봄 거점

처음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멀리는 못 가. 다리가 이러니까. 그래도 동네는 걸어.”
“누가 안 불러도 내가 가고 싶으면 갈 수 있는 곳이 많으면 좋지.”
“자주 가는 가게 사장님은 내 얼굴만 봐도 알아. 내 상태가 어떤지.”
“거기 가면 뭔가 사지 않아도 돼. 그냥 있어도 되는 것 같아.”

어르신들이 간절히 바란 것은 거창한 현대식 시설이 아니었습니다. 지팡이를 짚고도 혼자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곳, 나를 알아보고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있는 곳, 무언가를 구매하지 않아도 잠시 다리를 뻗고 머물 수 있는 다정한 쉼터였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바꾸었습니다.

“어르신들을 위한 새로운 공간을 어디에 만들까?”가 아니라, 
“우리 동네에서 어르신들이 이미 편안하게 드나드는 일상의 공간은 어디일까?” 

우리 가장 가까이에는 언제나 동네 가게들이 있었습니다.

늘 장을 보러 가는 작은 슈퍼, 혼자 가도 편안한 국숫집과 중국집, 동네 사람들이 차를 마시는 카페와 골목의 작은 문화공간들. 굳이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새로운 복지시설을 짓지 않아도, 골목길 그곳에는 이미 사람이 있었고 오랫동안 쌓아온 이웃 간의 신뢰가 숨 쉬고 있는 그 곳.

동네가게가 일동의 마을돌봄 거점 ‘다정곳간’이 되었습니다.

일동에서는 식당, 슈퍼, 카페, 찜질공간, 문화공간, 음악공간, 당구장, 마을정원 등이 다정곳간으로 참여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이웃과 따뜻한 한 끼를 먹었고, 어떤 곳에서는 건강차를 마시며 건강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이 시를 쓰며 삶을 이야기 했고, 음악을 즐기며 꽃을 가꾸기도 했습니다. 걷기도 힘든어르신들이 당구장 마실 나온 동네 아저씨들과 당구를 치며 즐기고, 작은 슈퍼에서는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넘어 서로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가게가 제공하는 돌봄의 매개체는 밥 한 끼, 건강차, 문화 프로그램 등으로 다 달랐지만,  핵심 가치는 같았습니다. ▲먼저 따뜻하게 인사하기 ▲이름과 단골 메뉴 기억하기 ▲잠시 쉬어갈 의자 내어주기 ▲한동안 보이지 않는 어르신의 안부 궁금해하기 ▲위급 상황 시 마을 조직이나 전문 기관에 연결하기.

다정곳간은 새로운 건물이나 시설이 아닙니다. 상인들에게 고도의 돌봄 기술을 요구하는 사업도 아니었습니다. 동네에서 오랫동안 주민들과 관계를 맺어온 가게와 생활공간이 어르신들에게 조금 더 다정하게 문을 열고, 이미 스며있던 이웃의 다정함을 발견하고, 그것이 마을의 공공 돌봄으로 이어지도록 서로 연결하는 마을돌봄 거점입니다.

 

 

 

 

 

골목에서 시작되어 도시로 확장되는 다정함

 

다정곳간을 통해 우리는 사람과 관계, 그리고 마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첫째. 어르신의 변화 (돌봄 대상에서 주체적 주민으로)

어르신들이 스스로 다정곳간의 단골이 되어 친구와 이웃을 이끌고 오는 홍보대사가 되었고, 서로의 안부를 교차로 살피는‘다정곳간 서포터즈’로 활약했습니다. 고립되었던 어르신들이 집 밖으로 나와 익숙한 골목의 당당한 주체이자 능동적인 동네 주민으로 삶의 활력을 되찾았습니다.

둘째. 상인의 변화 (영업 공간에서 마을 공공 공간으로)

상인들은 자신이 사회복지사나 전문가가 되지 않더라도, 평소 건네던 “요즘 왜 안 오셨어요?”, “잠깐 앉아서 차 한잔하고 가세요”라는 다정한 말 한마디가 돌봄의 시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게를 단지 물건을 팔아 이윤을 남기는 영업장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고 이웃을 살피는 ‘마을의 공공 자산’으로 만들어 가기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셋째. 마을의 변화 (작은 점들이 모여 이룬 관계돌봄 안전망)

식당, 슈퍼, 카페 등 골목 곳곳의 다정곳간들은 평소에는 독립된 하나의 ‘작은 점’으로 존재합니다. 하지만 주민주도 조직을 통해 이 점들이 서로 연결되자, 아침에는 슈퍼에서, 점심에는 식당에서, 오후에는 카페에서 어르신의 안부가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느슨하지만 촘촘한 ‘골목길 관계돌봄망’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넷째, 도시의 변화 (지속 가능한 미래 도시 돌봄의 대안 )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사회적 고립은 한 마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도시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러나 모든 돌봄을 새로운 시설과 전문기관만으로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동네 가게가 생활 속 돌봄거점이 되고, 주민이 만든 사회연대경제조직이 사람과 자원을 연결하며, 의료·복지기관과 행정이 이를 지원한다면 도시의 돌봄체계는 주민의 일상에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다정곳간은 작은 골목에서 시작했지만, 앞으로 도시의 돌봄이 어디에서 시작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마을의 작은 주민공동체가 사람과 자원을 연결하다.

 

다정곳간을 만들며 우리는 마을돌봄은 멀리 있는 특별한 시설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지나던 골목, 늘 마주치던 가게, 먼저 건네는 인사 한마디에서도 시작될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흩어진 다정함이 마을의 지속적인 돌봄으로 이어지려면 사람과 공간을 발견하고 연결하는 마을의 주체가 필요합니다.
어르신들의 필요를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참여를 주저하는 상인들을 설득하며, 전문적인 보건·의료·복지 서비스가 필요한 순간에 지역 자원을 연결하고, 무엇보다도 마을안에서 관계가 이어지도록 지속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조정하는 역할.

우리동네연구소 퍼즐협동조합이 바로 그 연결의 중심추 역할을 맡았습니다.

다정곳간을 기획하고 주민들과 함께 일구어낸 ‘우리동네연구소 퍼즐협동조합은 외부에서 유입된 사업 조직이 아닙니다. 

일동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이 직접 출자하고 참여하여 운영하는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마을 단위의 공동체‘주민주도 사회연대경제조직’입니다.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며 주민들의 미세한 필요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사업의 종료와 관계없이 골목의 자 관계망을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고 지켜냅니다.  마을의 흩어진 다정함을 발견하고, 이름을 불러주고, 서로 연결하며 마을의 힘을 키워가는 그 일에 마을기반 공동체가 서 있어야 합니다.

다정곳간을 다른 지역에서 시작하기 위해 같은 이름과 프로그램을 그대로 따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역마다 골목의 모습이 다르고 주민의 생활도 다릅니다. 농촌에서는 작은 마트와 미용실, 마을식당이 다정곳간이 될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편의점과 세탁소, 카페, 약국이 새로운 돌봄거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먼저 동네를 천천히 걸어보고 주민에게 물어보는 것으로부터,
“동네에서 어디가 가장 편하세요?”
“어떤 가게에 자주 가세요?”
“누구를 만나면 마음이 놓이세요?”
그리고 마을 안에서 이미 다정함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을 찾는 것에서 함게 시작해 봅시다.

 

 

 

총 게시물 : 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