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강사: 최도연 선생님 (원곡고 역사교사)
일시: 2018년 6월 21일 (목), 19~21시
장소: 모락모락 작은도서관
<주요내용>
1. 대한민국의 산업화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 대통령 집권 이후 우리나라의 산업화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우리나라는 수출을 통한 경제 발전을 목표로 하였으나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으므로 저가 제품을 만들었다. 제품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 적은 임금으로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하여 저곡가 정책을 적용하였다. 이로 인해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서울로 몰려들게 된다. 특히 대일/대미 수출을 용이하기 위해 개발한 대기업 공단과 항구는 경상도 지역으로 치우치게 되었고, 전라도 지역은 발달이 더디게 되면서 지역 감정의 발단이 되었다.
2. 안산시의 시작(반월공단)
1970년대의 안산은 논이 많고 포구가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1976년 반월신공업도시 건설계획발표 후 1977년 반월 공업단지 조성 공사가 시작되었고 도로와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공업단지로 변화하게 되었다. 30만명을 추정하여 개발한 안산은 10년만에 1986년에 시로 승격되었고 최근에는 70만의 인구를 넘겼다. 안산의 도시 계획의 특징 3가지 중 첫째는 안산이 도시 설계 계획을 세워 건설한 최초의 도시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전면 매수 방식’을 적용하여 개발한 도시라는 점이다. 세 번째는 자기완결형 전원 공업도시로 계획되었다는 점이다. 호주 캔버라를 모델로 하여 친환경 공업도시로 계획되었다.
3. 공단 건설의 그림자(시화호)
시화호는 안산시, 시흥시, 화성시에 둘러 싸인 시화방조제로 형성된 인공호수로, 명칭의 유래는 시화의 시(始)와 화성시의 화(華)의 첫차를 딴 것이라고 한다. 초기 시화호 개발의 목적은 시화호의 물로 대규모 간척지와 인근 공단에 농업, 공업용수 공급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방조제 완성 후 시화호는 ‘죽음의 호수’로 불리며 환경 오염의 극단적 현상을 보여주었다. 이후 10여년간 약 1조원에 가까운 막대한 예산을 환경 개선 등에 쏟아 부었으나 눈에 보이는 효과는 없었으며 결국 1998년 12월에 담수화를 포기하고 바다와 유통하였다. 그러자 자연 정화로 갯벌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철새들도 돌아오게 되었다.
4. 다문화 1번지, 안산
안산시의 발전 과정에서 부각되어온 또 다른 문제는 외국인 거주민의 존재와 증가 추세이다. 안산에 본격적으로 이주노동자가 들어온 시기는 1990년 전후였다. 공단의 중소업체들은 인력부족이 심각하여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주 노동자를 수용하였다. 특히 원곡동은 외국인 집단 거주지역, 외국인 마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마무리>
안산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토착민이 없는 도시, 이주민의 도시, 다문화 도시, 범죄와 공해의 도시로 얼룩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우리는 우리 자녀들의 고향인 안산을 어떤 도시로 만들고 싶은가? 더불어 사는 안산으로 구체적인 비전을 그려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