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강사: 이을 선생님(원곡고등학교 역사교사)
10강을 먼저 배우고 9강을 진행했지만 일제시대이기 때문에 이해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어요~
<주요내용>
1. 일제강점기 이해
19세기 후반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개발에 집중하던 시기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서구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식민지화 되었다. 고종은 갑오개혁에 의한 근대국가로의 변화, 을미사변 등의 사건을 겪으며 자주 독립적인 나라를 만들고자 대한제국을 수립하였으나 1905년 을사조약(을사늑약)이 이루어지고 만다. 일본은 국내 정세의 혼란을 틈타 전략적으로 침투해 들었으며 1910년 약소국 보호라는 표면아래 황제 친필서명도 없는 병합조약을 발표한다. 이후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시대를 겪게 된다. 초기부터 무단정치기(헌병 경찰 통치기), 문화정치기(민족 분열 통치기), 병참 기지화 정책기(민족 말살 통치기)라는 단계별 식민정책이 진행된다. 대한제국은 조선으로 개칭하고 통감부를 총독부로 설치하였으며, 최초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취임을 포함하여 총 8명의 총독이 부임하였다. 민중들은 매일 아침 천황을 향해 동쪽으로 절(동방요배)을 했으며, 신사 참배, 창씨 개명, 쌀 수탈 등의 치욕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역 곳곳에 신사가 생겼으며, 수암면, 반월면 등 면마다 신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 3.1운동(친일과 항일)
1919년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운동은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여 전 민족이 일으킨 항일독립운동으로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었으며, 이 운동 이후 일본은 무단으로 통치하던 정책을 문화통치라는 유화정책으로 바꾸게 되었다. 안산의 3.1운동은 3월 30일 수암동에서 처음으로 홍순칠 선생 등 6명의 주도 아래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수암동은 당시 중심가였으며 18개리 2,000여명이 비석거리에 모여 독립만세운동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비석거리는 건물로 바뀌었으며 비석은 뒤편으로 옮겨두었으며, 근처에 작은 기념비만 세워져 있다.
동막골에는 친일 행각을 한 이하영의 무덤이 있다. 이하영은 알렌이라는 미국 공사관 이사와의 친분관계를 통해 법부대신까지 지냈으며 그의 아들 손자까지 일본 육사로 승승장구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무덤이 안산에 있는 이유는 정확하지 않으나 은퇴 후 안산에 산 것으로 보고 있다.
3. 수인선 철도 이야기
1937년 일제시대에 생긴 협궤열차는 수원과 인천을 오갔으며 1995년 폐선되었다. 당시 소금을 많이 실어나른 것으로 보이며, 수원-어천-야목-사리-한대앞 역을 정차했다. 사진자료를 보면 원곡, 고잔, 일리 역 등도 보인다. 협궤열차는 말 그대로 폭이 기차로 앉으면 상대방의 무릎이 닿을 듯 할 정도로 실내가 좁았다. 그러나 이용승객은 많았던 것 같고, 폭이 좁아서 열차가 전복된 사고도 있었다. 더욱이 기차객실 바깥으로 맨 뒤에 매달려서 가는 승객을 보니 요즘과 달리 위험해 보였다.
4. 염전, 소금이야기
우리나라 전통 소금 추출방식은 바닷물을 끓여 말리는 과정을 거쳐 만드는 방식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제시대에 전쟁을 위해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천일염 방식이 도입되었다. 염전 바닥은 처음에 토판으로 시작했으며 흜은 수분증발이 덜 되어서 생산량이 적었다. 그래서 깸파리(옹기 깨부순 것)를 깔아서 사용하였으나 롤러하기가 어려워 타일방식으로 발전되었다. 그러다가 장판으로 바뀐적이 있는데 환경에 안좋다는 이유로 다시 타일방식이 정착되었다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