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강사: 강관섭 선생님(안산디자인문화고 역사교사)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나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
-이익의 가문과 정약용 가문의 연계: 천주교와 관련된 가계도
-안산의 일부가 한때 경기도 광주 관할이었던 것
<주요내용>
1. 성호 이익의 출생과 가계
성호 이익은 여주 이씨 가문 사람이다. 증조부는 광해군 때 좌찬성(의정부 종1품)으로 북인계열이었는데, 부친 이하진은 남인 중진으로 활약하며 도승지, 대사헌까지 지냈다. 그러나 경신환국에 의해 좌천되어 평안도 운산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이익은 운산에서 두번째 부인 안동 권씨에게서 태어난다. 아버지 이하진 사망 이후 이익은 경기도 광주 첨성리(현 안산지역)로 돌아오는데 셋째 형 이잠에 의해 양육된다. 그런데 이잠은 진사 신분으로 장희빈의 복권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역적으로 몰려 장살을 당하게 된다. 이익은 형 이잠의 사망은 이익이 과거를 통해 벼슬길로 나가지 않는 결정적 이유로 보이며 첨성리에 칩거하며 57년간 독서, 사색, 저술 활동을 하고 후학을 양성한다. 그의 제자들로 공서파 순암 안정복과 신서파 이승훈, 이벽, 이가환, 정약전, 정약용 등이 대표적이다.
2. 성호 이익의 경세관과 주요 저서
이익은 중농주의 계열의 실학자로 농업중심의 자급자족을 국가 및 개인 경제의 목표로 했다. 당시 토지가 지나치게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었는데, 이익은 토지의 고른 분배를 강조하며 한전법을 제안하였다. 이는 토지 소유의 제한을 설정하고, 대대로 농사짓는 토지를 두어 사적인 매매를 막고자 하였다. 상품화폐 경제의 발달이나 재산 증식행위를 부정적으로 보고 화폐 사용을 중지하자는 폐전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관료의 부패, 노비 매매, 문벌주의, 서얼차별 등을 비판했다. 주요 저서는 성호사설, 이자수어, 성호문집, 곽우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