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강사: 이철환 선생님(안산디자인문화고 역사교사)의 두번째 수업~
역사이야기인데도 졸리거나 지겹지가 않아요.. 집중집중하게 되는 수업이에요~
<주요내용>
1. 조선양반의 일생
조선 시대는 양인과 천민으로 구분한 신분제도를 갖고 있었다. 양인은 국가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 자유민으로 과거에 응시하여 관직에 나갈 수 있는 권리가 있었으나, 천민은 비자유민으로 힘들고 천한 일을 담당하였다. 양반은 원래 관직의 문반과 무반을 부르는 명칭이었지만, 점차 가족인 가문까지 부르게 되는 용어가 되었다. 조선시대는 아이가 태어나서 질병 등으로 죽지 않고 살아내는 것을 부모가 노심초사 지켜보며 키워야 할 만큼 자손이 귀했다. 아이들은 서당, 향교, 서원에 다니거나 개인 교습을 받으면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남자는 15세, 여자는 14세 정도가 되면 혼인이 가능했다. 이렇게 성장한 양반의 자녀들은 과거제도를 통해 국가 관리로 나아가게 되는데, 과거는 소과와 대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현재의 공무원시험만큼 합격이 어려웠다. 양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문과시험에 합격하여 관리가 되는 것이었으며, 시험에 합격이 어려운만큼 과정과 절차도 매우 어려웠다. 시험을 관리하는 기관은 엄정하게 채점하기 위하여 답안지에 쓰여진 응시자의 신분정보를 잘라 분리 보관하였다가 점수가 채점된 후 비교하여 응시자를 찾도록 하였다.
2. 안산의 양반가옥
안산에 있는 양반과 관련된 문화재는 진주 유씨 청문당이 대표적이다. 현재 부곡동에 위치하는 진주 유씨 집안은 선조의 딸 정정옹주와 혼인한 집안이었다. 청문당은 조선 후기 양반 가옥을 볼 수 있는 문화재이며, 표암 강세황의 지상편도를 근거로 과거의 모습도 볼 수 있다.
3. 고행록- 한산 이씨 이야기
사대부가 여인의 일생을 볼 수 있는 글로써 특정 개인의 이야기로 보편된 삶으로 볼 수는 없지만 양반가 여인의 우여곡절의 삶을 유추해볼 수 있다. 진주 유씨는 남인 집안으로 서인이 중용될 때는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유배를 가고 남인이 중용될 때는 중요관직으로 등용되는 극과 극의 처우를 받는다. 집안의 흥망은 그 집안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과 같았다. 게다가 가정 내 개인으로도 태어난 아이뿐 아니라 가족 중 아랫사람들을 지속적으로 하늘로 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조선의 제도는 비자유민인 천민에게는 평생의 한이었겠지만, 양인들이면서 남성에게는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사는데 관직에 나가면 안정된 사회 경제적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나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
-경국대전에 나타난 조선시대 관직
-무신의 관직은 한계가 있었고 승진하면 문신의 관직으로 이동되었다는 것
-그림을 통해 시대적 문화를 유추해 내는 것(돌잔치, 서당, 혼인식, 장례 등)
그리고 그림 안에서 그리는 내용과 그리는 시점에 따라 역사적 사실과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찾아내는 것- 담배가 그려져 있으나 수입된 시점으로 볼 때 없어야 맞다는 것
-아버지가 자녀의 육아일기를 꼼꼼히 기록한 점- 그만큼 조선시대 영아 사망률이 높았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