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강사: 이철환 선생님(안산디자인문화고 역사교사)
이야기꾼 이철환 선생님 ^^
귀여운(?) 이미지를 넘어서 안산 역사를 위해 대륙과 바다 건너 일본의 역사를 두루 훑어내셨습니다. 덕분에 우리들은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임진왜란, 정유재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이 일어날 때의 왕인 선조-광해-인조와 조선시대 전쟁을 심도 있게 바라볼 수 있었어요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나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
-임진왜란은 참혹한 전쟁이었지만 은을 화폐로 사용하는 경제로 변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의 명칭은 각 나라 입장에서 어떻게 기억하려고 하는가의 문제이므로, 어떻게 부를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며 국제적이고 객관적인 용어의 정의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역사에 대한 해석의 중요성)
-안산의 위인들- 김여물, 조경, 김류, 최정걸 등
<기타의견 및 교육후기, 추천의견>
-조선시대로 갈수록 역사적 사료가 많기 때문인지 상세하고 비교하고 확인할 내용이 많다.
<주요내용>
.임진왜란(1592~1598)은 조선 건국 이후 200여년간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면서 국방력이 약해지고 있을 때 일어난 전쟁으로, 당시 조선을 침략한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전국시대를 통일해가는 시점이었으며, 전쟁 기술과 도구(조총과 참마도)가 발달되어 있었다. 따라서 조선은 일본과의 전쟁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으며, 조선을 임진왜란 중심으로 조선 전기와 후기로 나눌 만큼 나라의 기반이 크게 흔들린 전쟁을 겪은 것이다.
임진왜란의 3대 전투는 한산도대첩(1592), 진주성대첩(1592~3), 행주대첩(1593)이다. 그 중에서도 이순신장군의 한산도대첩은 육지에서 계속 패전하며 선조도 피난을 간 상황에서 일본군의 식량보급을 끊어냄으로써 적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진주성대첩은 경상도를 점령하고 진격해오는 일본군을 막아 전라도롤 지켜냄으로써 조선의 수군을 지켜낼 수 있었다. 행주대첩은 명나라의 지원을 받아 일본군을 막는 중에 일어난 전투로 일본군의 총퇴각 병력과 싸워 크게 이긴 전쟁이다. 이때 전투가 일어나기 전에 안산 사람인 조경 장군은 행주산성에 목책을 만들어 승리를 이끄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의 묘는 건건동에 있으며 탐방예정지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이후 선무공신 18명과 호성공신 86명에게 훈공을 지급하는데 전쟁 현장에서 고통스럽게 싸운 장수들에 대한 치하가 부족한 듯 보였다.
광해는 여진이 세력을 쌓아 만든 후금과 명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하고 국정을 훌륭하게 해 내지만 광해를 지지한 북인은 소수 세력으로 서인이 권력을 얻기 위해 일으킨 인조반정에 의해 밀려나게 된다. 이때 7명의 주도자 서인 중 한명인 김류는 안산 사람으로 임진왜란 때 탄금대전투에서 싸우다 전사한 김여물 장군의 아들이다. 그이 묘는 와동에 있으며 역시 탐방예정지이다. 인조는 광해군의 중립정책을 지양하고 반금친명을 도모하다 후금의 침입을 받는데 이것을 정묘호란이라 한다. 후금이 청으로 국호를 고친 후에도 친명을 한 조선을 재 침략하는데 이것을 병자호란이라 한다. 이때 청은 7일만에 강화도로 가는 길을 차단하여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하게 되는데 청의 대군앞에 무릎을 꿇고 삼전도 굴욕을 당하게 된다. 병자호란 중에 외적과 맞서 싸워 7명의 적군의 목을 베어 임금에게 바친 장군이 있었는데, 바로 안산 사람 최정걸 장군이다. 그의 묘는 사동에 있다.
전쟁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전쟁의 피해자가 왕이 아니라 그 나라 백성이라는 것이며, 전쟁은 국제정세의 영향을 받으므로 세력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무엇보다 전쟁이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에서는 리더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것이다.